IMF 환란의 직격탄을 맞으며 상승한 이자율 때문에 차입경영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태였다. 모든 기업이 자기 자본을 높여야 했고 자기 자본을 높이려면 영업이익률을 높여야 했다.
우리 회사도 이익을 많이 내는 부서는 높은 보너스를 지급하는 제도를 채택하여 직원들의 성과를 독려하였다. 본부장으로 있던 일부 부서는 높은 이익을 달성하여 담당부장과 직원들이 많은 보너스를 받아 신문에 크게 보도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목표를 채우지 못한 부서는 그만큼 덜 받는 제도로 성과가 부진한 부서의 직원들은 불만이 컸다.
이러한 성과주의 문화는 우리 기업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제도든지 그 기업의 문화와 맞아야 도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신념은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터득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성과주의 제도를 운용하고 나서 3년이 지나는 동안에 부진 부서에서 근무하던 우수한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여튼 1997년 11월에 발생한 국가 부도 사태는 약 3년을 지나며 성장 위주의 경영 방식에서 발생하였던 많은 문제를 개선하여 정상 경영 방식이 자리잡아 가게 하였다.
백덕현은 1951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나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여 잭 니클라우스 팀장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이사 등을 역임하며 생산과 유통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1년 당시 상무 직급으로 FnC코오롱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으며, 2004년 FnC코오롱 중국법인장을 맡아 중국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 FnC부문 대표이사로 복귀하여 코오롱그룹의 패션사업 부문을 이끌었다. 제18대 한국의류학회 부회장을 역임했고 2016년에 제3대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