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연각호텔 화제가 발생한 그곳에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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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호텔 화제가 발생한 그곳에 있던..

박정식 기자 0 2024.02.19

일제 강점기 백화점이라는 문물 네 번째 이야기 

 

미츠코시 백화점 바로 옆에 문을 연 히라타(平田) 백화점의 창업자 히라타 치에토(平田智恵人)1908년에 경성의 건너와 명동(本町丁目, 미츠코시 옆)에 일본식 잡화 및 가구 상점을 개점했다.

 

1915년과 1922년에 점포를 확장하고 1926년에는 중심가에 위치한 목조 2층 점포를 개장했다. 매장 크기는 다른 백화점에 비해 1/3 ~ 1/4 정도로 작았지만 명동의 입구에 위치하여 드나들기 쉬운 이점을 활용하여 각종 잡화와 식료품의 대량구매로 싸게 판매하는 오늘날의 슈퍼마켓에 가까운 상점으로 번성했다.

 

위의 지도에서 보여지듯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에 일본의 백화점들이 4곳 위치해 있고 이후 개점한 화신 백화점이 종로 쪽에 위치한 것이 확인된다. 당시 경성시내는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물론 지금의 한강이 기준이 아닌, 청계천이 기준인 것이었다, 이 청계천을 경계로 충무로, 명동, 을지로를 일본인 상권인 남촌으로 종로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상권인 북촌으로 칭하였고 양쪽의 풍경이 명확히 달랐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탐촌에서는 세련된 옷을 입고 하늘하늘 다니는 사람이 넘쳐난 반면 종로쪽인 북촌은 과거 시전의 영광이 빛을 잃었다고 할 정도로 낮 시간엔 한산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일본상권에 조선이 파워를 보여준 것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화신백화점의 개점이다.

 

당시 신문광고에는 이런 내용이 실렸다. ‘도약하는 조선의 화신’, ‘조선의 백화점등의 표현을 사용, 민족성을 가일층 강화했다. 또한 화신백화점의 갤러리에서는 조선인 화가들의 전시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 히라타 백화점이 있던 건물터를 놓고 무서운 에피소드가 한 가지 있는데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고층건물 최대의 화재사건이 일어났던 대연각 호텔 화재사건이 발생한 곳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서의 화재가 한번이 아닌 대연각 화제직전까지 코고 작은 화재가 4번이나 발생했고 그 첫 번째 화재는 해방 후 19472월 히라타 백화점이 萬物廛(만물전)이라는 상호로 변경하여 영업을 시작한 직후인 19473월 화재가 일어나 이전 영업중이던 건물은 전소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후의 혼란 속에서 이 자리에 高美波(고미파)라는 카바레가 영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건물 역시도 19591월에 화재로 사라져 버린다.

 

1960년에 舞鶴聲(무학성)이라는 캬바레가 영업을 시작했으나, 1967년에 극동건설이 이 부지를 매입, 大然閣(대연각) 빌딩 건설에 착수, 1969430일에 大然閣호텔을 오픈했다. 하지만 19711225일 크리스마스에 대연각호텔의 1층 커피숍에서 가스폭발로 화제가 발생, 22층 호텔이 화마에 휩싸였고 화염에 의한 피해자 157, 그중 39명은 추락하여 사망하는 대참사가 발생한다.

 

사고 4년 후인 1975년에 이강학이 이끄는 해외산업이 빅토리아호텔을 인수하면서 호텔로 영업했던 11층 이상의 구역도 전부 사무실용으로 바꾸는 등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거친 후 빌딩 이름도 고려대연각타워로 변경하여 재개장했다. 현재도 빌딩으로 쓰이고 있다. 덧붙여 1969년에 완공되어 이미 50년이 넘은 건물이다.

 

아울러 운영법인도 대연각관광(1976), 대연각물산(1978)을 거쳐 1982년부터 고려통상으로 명칭을 바꾸어 존속중이다. 현재는 고려 대연각빌딩의 명칭을 쓰고 있다. 어찌되었건 이 히라타 백화점도 당시 경성 5대 백화점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백화점 100년 역사를 돌아본 안형준씨는 현대백화점에서 20여년간 일하며 틈틈이 일본과 한국의 백화점 역사 자료를 모아 이번 글을 썼다. 안형준씨의 글쓰기는 아직 진행중이며 연재가 끝날 즈음에 백화점의 현재와 미래가 더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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